19. 인레-5 (1.17.)

다음 도시인 바간으로 넘어가는 건 오늘 밤이었다. 호텔 조식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오늘 하루 뭘 할까?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지도 염려스러웠다. 왜냐면 어릴 적 보조 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탄 이후로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으며(내 기억으로는), 성인이 되고나서 탄 건 16년 12월, 영국에서 잠깐 탔던게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묵었던 호텔에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있었다. 좋아좋아,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구글맵이 안되니 지도도 없었거니와 어차피 작은 마을이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물 한 병에 카메라, 가방만 가지고 출발! 처음에는 휘청휘청거렸다. 가다가 멈춰서고 가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배 기사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에 같은 코스를 몇 번 돌았는데, 계속 같은 곳을 지나가자 나를 지켜보시던 아주머니께서 나중에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였다.  아까는 못 타더니 이제 잘 타네! 와 같은 느낌으로. 어느새 나는 요령을 익혀 잘 달리게 되었다. 이렇게 내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어디로든 가는 이 기분. 좋다.

자전거 연습하기 딱 좋은 길이었다. 사람이 거의 안 다녀서..ㅎㅎ

이름 모를 사원. 하지만 현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혼자 다니는 것. 나는 이게 참 좋다. 혼자 가는 여행과 같이 떠나는 여행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혼자 떠난다는 건 모든 게 나의 선택이라는 점이 참 좋다. 자유로워.

 

혼자 동네 공터에서 자전거 타는 내 모습을 찍기도 하고 학교를 지나치며 한국에서의 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딘지 모를 사원에 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소원도 빌었다. 그리고 점심으로는 샨누들을 먹었다. 아마 정통 샨누들을 먹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내 의지대로 선택해서 먹는 첫 미얀마 음식이었다. (어제 H아저씨와 먹은 건 .. 오롯한 내 선택은 아니었으므로.)

어제 저녁에 갔던 가게! 샨누들과 감자튀김을 먹었다.

스티키 누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면은 끈적끈적했다. 이런 맛이었구나! 처음 먹어보는 맛에 재밌었다. 그리고 감자튀김도 시켜 먹었다. 나는 감자튀김이 정말 좋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호텔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호텔에서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데, 그 당시의 나는 요양보다는 무조건 관광파였기 때문에 한시라도 방 안에 있고싶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방 안에 있으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다시 또 어디론가 떠났다.

일단 모기 퇴치제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몸에 뿌리는 모기약이 있다던데, 나는 다이소 같은 느낌의.. 모든 것을 다 팔 것 같은 가게에 들어가서 열심히 모기약을 찾았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하나를 샀다. 그리고 걷다보니 어떤 사원에 도착했다. 여전히 알아볼 수 없는 글자였지만 여기가 사원이구나는 알 수 있었다. 앞에 흐르는 강을 보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인간 관계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을까. 아니면 홀로 서고 싶었던 걸까. 여러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던 시기였고 나를 둘러싼 여러 관계들에 대해 의문이 들던 시기였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것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그 당시의 나에 비해 많이 성장한 지금이지만 여전히 답을 알 수가 없다. 

한적하고 참 평화로운 마을. 가만히 혼자 걷다보면 찾아오는 조용함이 좋았다.

잠깐을 생각하다 다시 또 걸었다. 바로 앞에 시장이 있었는데 시장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진 않았다.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계속 걸어서 피곤했나보다. 또 저런 생각까지 했으니 난 좀 지친 상태였다.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다. 카페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아.. 러 펫 예?"

대뜸 밀크티 있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관광객이 올 만한 곳도 아니었고 내가 말하는 러펫예가 실제 미얀마어로 밀크티의 발음과 많이 달랐을 것이므로.. 

"밀크티 밀크티.. 러펫예.."

밀크티와 러펫예를 여러번 반복한 뒤에 가게 직원이 알아들었고 그제서야 나는 오케이 오케이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와, 내가 처음으로 메뉴판을 가리키지 않고 말로 주문한 밀크티다! 잠시 후 밀크티가 나왔고 역시나 따뜻한 밀크티였다. 이제는 적응이 됐다.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데 강아지가 다가왔다. 사실 난 강아지나 개.. 또는 여러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도 개를 키우긴 하지만 나는 우리집 개랑 별로 친하지 않다.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아이들은 나에게 너무 달라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멀리서 볼 때는 좋지만 가까이 오면 싫은거다. 나에게 달라붙는 그 자체도 별로 달갑진 않지만 혹시나 내가 나도 모르게 쳐냈다가 걔들을 다치게 할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냥 거리를 두고 지내고 싶은거다.

그런데 웬 알지도 못하는 동네 떠돌이 강아지가 앉아있는 나에게로 다가왔고 나는 선뜻 그 강아지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지만 여행지에서의 나는 한국에서의 나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강아지는 정말 귀여웠다...

잠시 그 강아지와 놀다가 혹시 큰 엄마 개가 오지는 않을까 무서워졌고 마침 밀크티도 다 마셔서 가게를 나왔다. 양곤보다는 시원했지만 오후의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고 조금 동네를 걷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날 밤 나는 다음 도시인 바간으로 떠나야했기에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최대한 많이 담아두려고 조금 걸었다. 내가 살면서 다시 이 마을에 올 일이 있을까?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에 다음에 미얀마 여행을 온다해도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막상 떠나려니 또 아쉬웠다. (2022년 글을 쓰는 지금은 가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도 그렇고 미얀마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다시 밤버스를 타고 떠났다. 인레 안녕!

(이 버스도 묘가 예약을 도와준 버스인데, 내가 VIP!! 를 강력 주장했던터라 옆 사람없이 1인 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에어컨이 너무너무 세서 추웠다. JJ버스였나..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