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레-4 (1.16.)

처음에 H아저씨와는 학교 얘기부터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꽤 즐거웠다. 나도 미얀마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편안하게 즐기는 밤이기도 했고 얘기를 나눌 사람도 있으니 그 자리가 참 재미있었다. H아저씨는 결혼을 하셨지만 아내분과 따로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아내분과 본인이 가고싶어하는 여행지가 다르기도 하고 두 사람 다 그런 여행에 동의를 해서 그렇게 다닌다고 했다. H아저씨는 여행을 가면 항상 그 도시의 클럽에 간다고 하셨다. 어떤 도시의 클럽에 가 보면 그 도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했나? 아무튼 이번 도시 인레는 클럽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그런 곳에 갈 엄두도 안 나고 사실 제대로 가 본 적도 없다.

그러다가 이야기의 주제는 연애,결혼으로 넘어갔는데 남자친구가 있냐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당시 나는 내 나름의 고민도 이야기를 했고, 왜 남의 사랑 얘기가 제일 재밌다고 우리는 꽤 오래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난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과 잔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두 명이나 그런 파트너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뭐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싶었지만 또 모르는 사람이니까, 오늘 보고 안 볼 사람이니까 아무데서 말 못 할 이야기를 하는걸까 싶었다. 약간의 고해성사 느낌이랄까. 아저씨는 그 여자들과 가벼운 관계만 유지하고 싶었는데 (가벼운 관계라는 건.. 잠자리만 하는 관계겠지?) 상대방 쪽에서 항상 그 이상을 생각해서 관계를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는 본인과 같은 생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와, 내 눈으로 이런 불륜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평소의 나라면 절대 말도 섞기 싫어하는 사람 유형이었지만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가 아님 나도 앞으로 안 볼 사람이 생각해서 그런가 그냥 ‘네..~~’하고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아니기에 ‘아, 네~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죠..’하며 적당한 대답을 했다. 혹시 여기서 내가 아주 듣기 싫은 내색을 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리고 어차피 나랑 관계 없는 일인데 뭐 그러려니 할 수 있기 떄문이다. 아저씨는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손사레를 치며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절 뭘로 보시고..! 세상에 별 사람 다있구나 싶었다

어느덧 우리는 이미 맥주를 한 병씩 마셨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약간 당황스럽고 띠용하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투어도 재밌게 했고 또 한국인과 얘기를 해서 즐거웠다. 술집은 내가 묵는 호텔 바로 앞이었고 아저씨가 묵는 호텔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기에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호텔로 올라왔다. 술이 늘었나, 미얀마 맥주가 그다지 세지 않은가? 딱 기분 좋을 정도로만 술기운이 올라와서 씻고 기분좋게 잠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오늘 하루를 회상해 보았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지만 즐거웠다. 특히나 아까 본 일몰은 정말 잊지 못할 거다. 처음 먹어본 샨누들도 꽤 맛있었고 맥주까지 기분좋게 마셨으니 꽤 괜찮은 하루였다. 그리고 카톡을 확인하다가 나는 우리 학교 친한 쌤들 톡방에 오늘 진짜 요상한 사람을 만났다며 H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좀 충격이었다고, 황당하죠! 라면서 말이다. 한국 시각으로는 너무 늦은 새벽이어서 그런지 다음날 아침(1.17.) 답이 왔다.

“그거 너랑 한 번 하려고 그런거 같은데.”

네?..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나? 아닌데, 그런 건줄 전혀 몰랐는데…. 물론 이것도 본인의 말이 아니니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설마 정말 그런 뜻이었나?' 하는 의심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러자 아저씨가 어제 그 말을 나에게 꺼내고 나한테도 그런 적이 있냐고 물은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가 그런 쪽으로 눈치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정말 아저씨가 날 잘 챙겨주시는 부장님 같은 느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묘에 이어서 H아저씨까지. 인간 관계란 무엇일까? 갑자기 허탈해졌다. 나는 정말 호의로, 그냥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친해지고 싶었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허탈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유와 목적 없이 잘 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정말 그런 것일까. 차라리 모르고 넘어갔으면 그저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었을까? 괜시리 어제 하루가 찝찝해졌다.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인레 모습

호텔 마당에서 강아지들이 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