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레-1 (1.16.)

버스는 밤동안 쉼없이 달려 바간에 도착했다. 사실 쉬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는데 페이머스 버스 전용 휴게소인 것 같았다. 난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고 식당에서 배를 좀 채우기로 했다. 버스에서 기본적으로 간식으로 먹을 빵과 물을 줬는데 그 것보다는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메뉴판을 보니 간단한 음식부터 정말 든든한 한끼 식사까지 아주 다양했는데 난 카야잼을 좋아하기 때문에 카야 토스트를 시켰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밀크티도 함께 주문했다. 사실 메뉴판에서 어떤게 밀크티(러펫예)인지 알지 못해서 직원에게 물어봤다.

“혹시 여기서 러..펫..예..가 뭐예요?..”

나는 러펫예라는 발음이 자신이 없어서 우물쭈물 물어보았다. 역시나 직원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밀크티 밀크티.. 러..펫..예.. 이러면서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자 직원은 그제서야 알아 듣고 이거라고 알려주었다. 정확한 발음이 뭘까? 러펫예, 라펫예? 누가 한국어로 발음을 적어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주문을 하고 양곤에서의 시간들을 곱씹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와, 따뜻한 토스트와 밀크티. 달콤했다. 나는 야무지게 먹고 간단하게 양치를 하고 다시 버스에 탔다. 그냥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다는 것에 들뜨고 신이 났다. 이제야 진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때문에 속상하지는 않았다. 어쩔수 없는거니까 뭐. 내 성격의 장점인 것 같다.(장점 맞나?)

휴게소 식당의 모습

메뉴판

카야잼 토스트와 따뜻한 러펫예. 맛있었다

버스에서 받은 빵

여행을 할 때에는 몇 개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그러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때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새로 산 중고폰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지니 뮤직에 직접 접속해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유행했던 노래가 지코의 아무 노래였는데 이 때 아무 노래를 진짜 많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노래가 시작될 때의 그 뚜둔뚠 뚜둔뚠-. 하는 멜로디만 들으면 이 버스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노래의 힘이란.

그렇게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 4시쯤이었나.. 저 멀리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어떤 마을로 들어서는 것 같더니 멈춰서버렸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아직 도착 시간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멈춰서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버스의 문이 열리더니 서너명의 남자가 올라타서 승객들을 차례로 한 명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난 평소 터무니 없는 걱정이나 생각은 잘 안하는데 이 순간에는 ‘뭐야, 이 버스 우리를 납치 하는거였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남자들은 점점 내 쪽으로 가까워졌고 얼굴을 확인하더니 15000짯을 내라고 했다. 인레 입장료였다. 미얀마의 각 도시들은 도시 입장료를 받는데 인레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렇게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내고 표를 사는 것이었다. 알고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갑자기 밤중에 웬 남자 서너명이 다짜고짜 만 오천짯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특이하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저멀리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인레 도시 입장 티켓

그리고 한시간 정도를 더 달렸나? 다시 눈을 뜨니 승무원이 인레에 도착했다고 안내를 해 주었다. 나는 낭쉐(트레킹을 시작하는 지점인 것 같았다.)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내려야 했다. 나와 몇몇 승객을 내려주고 버스는 유유히 갈 길을 떠났다. 참 애매한 시간이었다. 난감했다. 일단 오늘 보트 투어 동행과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정확하진 않지만 8시였던 것 같다.) 지금은 5시 반정도 밖에 되지 않앴다. 나는 투어 전에 좀 씻고 싶었다. 보트 투어를 가면 선셋까지 보트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머리도 못 감고 찝찝한 상태로 가고싶진 않았다. 그래서 일단 호텔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호텔은 내가 내린 곳에서 멀지 않았다. 인레 자체가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호텔까지는 걸어서 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직원 한 명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밤 여기에 묵기로 했는데 혹시 지금 체크인이 가능할까요?”

한 두시간도 아니고 몇 시간이나 일찍 체크인을 할 수 있냐니. 호텔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했을 것이다. 직원은 확인을 해본다고 했고, 다행히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이제 돈도 있겠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얼리 체크인과 오늘 아침식사까지 지불을 했다. 예에-!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직원이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와. 방은 정말 좋았다. 사실 혼자 여행을 다니니 도미토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예산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혼자 편하게 방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4개의 도시 중 한 곳만 빼고는 다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이 때 미리 숙소를 다 예약해놓고 와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방에 들어서니 갑자기 기분이 들떴다. 신이 났다. 넓은 침대와 쾌적한 방! 나는 짐을 대충 풀고 얼른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루프탑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는 뷔페 형식으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호텔 조식답게 계란은 주문하는 대로 요리를 해주었다. 나는 볶음밥, 면, 과일 등을 적당히 챙겨먹고 방으로 와 투어를 위한 짐을 챙겼다. 한국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오늘 하루 시작!

호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