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양곤-7 (1.15.)

점심을 먹고나서의 나는 얼른 서류를 받고 묘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텔 주변의 작은 사원 한 군데에 들렀다. 사실 묘가 사원 한 군데 더 가볼래? 하길래 그래,라고 대답했던 건 나다. 묘는 그 사원에 가면 온 사방이 금으로 꾸며져있다고 했는데 그게 꽤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원은 아주 작았다. 동네 사원 같기도 했고..? 그 규모에 비해 사람은 있는 편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이제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신기했다. 사원은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형식이었는데 정말 그의 말대로 금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일종의 아쉬움인데, 종교적인 건물을 갈 때 내가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이면 어땠을까한다. 그러면 그 건물의 의미를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유럽 여행을 할 때에는 기독교도 천주교도 아닌게 아쉬웠고, 대놓고 불교국가라고 하는 태국을 갈 때도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 미얀마에 올 때는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와야겠다 다짐했는데 쉽지가 않더라.. 어려운 책이라 잘 읽히지가 않았다. 못내 아쉬워할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건 아직 그만큼의 절박함이 없다는 건가 싶다.

사원을 구경하고 이제 다시 택시를 타고 아침에 우리가 출발했던 사원쪽으로 돌아왔다. 오후 3시쯤이었던 것 같다. 일단 어떤 복사 가게 같은 곳에 들러서 나의 여권을 복사했다. 그 변호사에게 보내야 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을 지불했다. 변호사 비용인 것 같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꽤 큰 돈이었다. 내면서 덜덜-했던 기억이.

묘가 말하기를 한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서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마침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지 않았기에 우리는 차를 마시러 어떤 카페에 들어갔다. (음, 물론 카페이겠지만 뭔가 카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랑은 조금 달랐기에 찻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나 싶다.) 한낮에 계속 돌아다녀서 너무 더웠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키면 좋았을텐데…. 메뉴판을 살펴보았지만 알아볼 수 없었고 그냥 묘가 시키는 대로 마시기로 했다. 역시나 따뜻한 밀크티. 그래도 다행인건 가게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있다는 점.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는 것도 꽤 괜찮았다.

“아직 멀었어?”
“연락 안 왔어?”
“빨리 되면 좋겠다….”

평소 낯가림도 있고 묘와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ㅋㅋㅋㅋㅋ) 그러다가 나의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일정은 양곤-인레-바간-만달레이였는데 양곤-인레는 버스를 예약했지만 나머지는 아직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는 그때그때 예약을 하려고 했었다. 현지 여행사에서 사거나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거나. 그런데 이제 인터넷으로 예매는 할 수 없으니 다음 숙소에서 도움을 받아 살 생각이었다.

“만달레이? 너 어떤 호텔에서 묵어? 네가 만달레이에 가면 내가 선물을 줄게.”

묘는 만달레이에 간다는 내 말을 반기며 선물을 준다고 했다. 웬 선물?하고 물으니 본인은 그 때 양곤에 있을 예정이지만 자기 가족들이 만달레이에 있으니 가족들에게 말해 나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이다. 원래 같았으면 나는 오, 대박! 고마워!하고 냉큼 호텔 이름을 알려주었겠지만 아까의 일이 떠올라 그래, 고마워. 나중에 알려줄게.라고 말했다. 묘는 자기를 절대 잊으면 안된다며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인스타 맞팔을 하자고 했는데 나는 인스타를 하긴 하지만 팔로우를 받지 않는다고 했고 그래서 나만 묘를 팔로우 하게 되었다.

“아, 그리고 미리 티켓을 사놓는게 어때? 내가 사는거 도와줄게.”

묘는 또 자기 친구 중에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며 버스 티켓을 사러 가자고 했다. 묘의 인맥은 어디까지였을까…. 뭐 하는 애였을까…? 그 때 나는 사실 거절하고 싶었다. 정말 고마웠지만 몸이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그냥 앉아서 쉬고 싶었다. 이 더운 날에 또 걸어가야 한다니… 너무 피곤하고 지쳤었다. 하지만 또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냐 말이다. 그리도 내 입장에서도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 사놓는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또 길을 나섰다. 골목골목을 지나 어딘가 작은 여행사에 도착했다. 미얀마는 땅이 넓고 큰 도시들이 꽤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보통 여행자들은 숙박과 시간문제 때문에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그래서인지 버스 회사도 굉장히 다양하고 서비스도 꽤 좋다고 했다. 한 번도 야간버스를 타고 이동해본 적이 없던 나는 이런저런 후기들을 많이 찾아 보았는데 보니 여러 회사의 버스들이 다 비슷하게 좋은데 어떤 회사들은 vip 버스가 있다고 했다. 나는 묘에게 vip버스를 강조했다. 돈이 딱히 문제가 되진 않으니 최대한 몸 편하고 마음 편한 버스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대한 두 명이 같이 앉는 좌석이 아닌 혼자 앉는 좌석에 앉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과 붙어 앉아서 밤새 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첫 양곤-인레 구간을 이미 예약을 해 두었기에 인레-바간 야간버스, 바간-만달레이 주간버스를 예매했다. 바간-만달레이 구간은 멀지 않아 주간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door-to-door를 해주는 작은 버스가 있었고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큰 버스가 있었다. 나는 몸이 편한 큰 버스를 원한다고 재차 강조했고 다행히 내가 원하는 컨디션의 버스를 예매할 수 있었다.

버스 티켓까지 사고 나니 이제 서류를 찾으러 가면 되는 듯 했다. 마침내 나는 갈색 봉투에 든 서류를 받았고 묘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며칠이 걸리는 건데 순서를 무시하고 내 것을 앞으로 당긴다고 돈이 많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런 마음을 써준 묘가 참 고마웠다. 어느새 5시가 다 되었고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아까의 그 경계심과는 별개로 참 고마운 인연이라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다. 묘는 마지막까지도 참 친절했다. 인레로 넘어가는 버스는 저녁 7시였고 외곽에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는 한시간 정도를 가야했는데 묘는 택시를 잡더니 기사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숙소에 들렀다가 짐을 가지고 터미널까지 가달라고 말했어. 만 짯이라고 해두었으니 나중에 만짯만 내면 돼. 기억해, 만 짯이야.”

아, 이런 세심한 배려가 참 고마웠다. 마지막까지 나를 생각해 가격까지 흥정해주다니.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묘는 몇 차례나 자기를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고 만달레이에 가면 꼭 연락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손을 흔들어주는 묘를 뒤로하고 나는 떠났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이제서야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차분해진 마음과 함께 혼비백산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풍경들도 눈에 들어왔다. 별 일이 없어서 다행이고 이렇게 풀려서 참 감사했다. 물론 휴대폰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휴대폰을 잃어버림으로서 정말 잊지 못 할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 아마 다시는 경험하지 못 하겠지.(경험하고 싶지 않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며 묘에게 정말 고맙다고 디엠을 보냈다. 고마운 나의 마음을 thank you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어라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텐데 말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어제 만나기로 했던 동행을 만났다. 폰을 새로 사고 아침에 카톡이 되자마자 정말 죄송하다고 폰을 잃어버렸었다고 말했었는데 그 때 오늘 밤에 같은 버스를 탄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초면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을 만났다는 사실에 너무 반가웠다. 얼굴을 보고 다시 정말 죄송했다고 말하니 오히려 괜찮다고, 연락이 안 돼서 무슨 일 생겼나 걱정했다고 말해주셨다. 그 분도 만나기로 했던 동행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어 불쾌하고 화가 났을텐데 저렇게 말해주니 참 고마웠다.


어느덧 7시가 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의 마지막 종착지인 따웅지에는 내일 아침 8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가는 노선 중에 내가 내릴 곳인 인레가 있었는데 아침 6시~7시에 도착한다고 했던 것 같다. 무려 12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니. 조금 아찔했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처음 타본 야간버스가 후기처럼 나쁘지 않고 편안하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버스 후기에는 새벽에 추우니 경량 패딩을 챙기라고 했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버스 안은 바깥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정말! 추웠고 나는 버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담요를 덮고 패딩을 입었다. 잠시 후 승객을 모두 태운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양곤에서의 기억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