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양곤-6 (1.15.)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많이 피곤했는지 아주 꿀잠을 잤다. 카카오톡이 잘 되려나, 24시간은 지나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다시 시도해보았다. 그러자 웬걸! 어제와는 다른 화면이 뜨면서 내가 맞는지 인증을 하라고 했다. 이게 또 좀 웃긴게 인증하는 방법은 내 친구들의 옳은 프사를 고르는 거였다.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의 프사를 보여주고 000님의 프로필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다행히도 나는 카카오톡 친구 중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지워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로 나온 사람들의 프사를 다 알고 있었다. 좁은 인맥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나 싶었다. 와! 드디어 카카오톡이 되었다. 밤새 쌓였던 카톡을 확인하고 답을 보냈다. 나는 옛날 사람?이어서(ㅋㅋㅋ) 아직 쿼티 키보드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천지인인가 나랏글인가 하는 키보드를 쓰는데 이 중국폰은 쿼티라도 되는게 다행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쿼티로 글을 적자니 속도도 느리고 오타도 많이 났다.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감사한 마음이었다.

만나기로 했던 동행, 친구들, 가족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아, 그래 카카오톡이 되면 나는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돌아갈까 말까 하던 나였는데 말이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차마 가족에게는 돈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많이 걱정할까봐. 다행히도 친구가 바로 돈을 보내주었다. 이제 나는 걱정할 게 없었다! 폰도 되고 돈도 생겼고, 여행을 끝마치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갑자기 폰을 잃어버려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중에 묘를 만나서 서류를 받고 ATM에서 돈을 뽑고 양곤을 좀 보다가 오늘 밤에 인레로 넘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짐을 챙기고 호텔 조식을 먹고 묘를 만나기 위해 사원으로 향했다. 어제 내가 큰 신세를 졌으니 오늘은 꼭 보답을 해야지 싶었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큰 문제를 하나 알게되었다. 바로 이 폰은 구글 맵이 안 된다! 구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지도를 보는 정도는 되었으나 내가 원하는 건 실시간 내 위치와 경로찾기 등의 기능이었다! 오마이갓, 구글 맵 없이 어떻게 여행을 하란 말인가? 사실 양곤 같은 큰 도시는 내가 어디인지 대략 알 수 있으니 그래도 괜찮다하지만 나는 나중에 바간에서 이바이크도 타야하는데, 오마이갓. 사원으로 향하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아, 뭐야 어떡해!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동행을 구해야지 뭐.

약속한 10시쯤 사원 앞에 도착하니 묘가 피곤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제 밤에 열심히 논 것 같았다.

“오늘 기분은 어때?”
“괜찮아. 내가 어제 걱정하던 메신저가 이제 작동하더라!!”
“잘됐다. 그럼 너 여행 계속 할 수 있겠네~”
“응. 고마워. 아! 나 돈을 뽑고 싶은데 ATM이 어디 있을까!?”
“그건 나중에 가고 일단 우리 차 한 잔 마시러 갈까!?”
“응? 내가 사야하는데... 그래.”

나는 묘를 만나서 얼른 서류를 받고 양곤을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묘는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광장에서 사진도 찍어 주었다. 오늘도 차는 역시 따뜻한 밀크티. 이렇게 찌는 듯한 더운 날에 이렇게 따뜻한 음료라니, 이제 조금은 적응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묘는 나에게 혹시 쉐다곤 파고다에 가 보았냐고 물었다.

“안 가봤어. 진짜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러면 가야지! 양곤에 왔는데 그걸 안보고 가면 안 된다고! 지금 쉐다곤 파고다 보러가자.”

아니, 서류는?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어차피 나도 오늘 얘한테 서류를 받고 쉐다곤 파고다만은 보고 인레로 넘어가야지, 싶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했다. 나는 구글 맵도 잘 안 되는.. 돈도 없는 외국인이고. 얘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차를 얼른 마시고 쉐다곤 파고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한 5분정도를 걸으니 웅장한 쉐다곤 파고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어제 봤던 도심속의 사원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훨씬 웅장하고 커다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원의 모습이었다. 사원은 높은 곳에 있었고 입장료는 만 짯이었다. 다른 사원들에 비해 비쌌지만 이 어마어마한 크기를 보니 납득이 되었다. 도시를 대표하는 사원이니까 말이다.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묘가 입장료를 내 주었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맨발로 밟는 이 느낌, 아직은 어색한 느낌이 더 컸다.

들어가니 더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와-! 진짜 크다! 사람도 정말 많았다. 눈 앞에 온통 금색 사원들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미얀마어도 모르기에 그 사원에서 어떠한 의미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웅장한 그 크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어제에 비해 마음이 편하고 다 해결될거라 생각해서인지 마음이 편안했다. 위기에서 여행의 상황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으니 묘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사실 혼자 다니면서 제일 아쉬운게 사진인데... 먼저 찍어주겠다고 말해주는 묘 덕분에 나는 쉐다곤에서의 사진도 몇 장 건질 수 있었다. 생일이 무슨 요일이냐고 묻기래 금요일이라고 하니 금요일 부처상을 찾아서 저기 서서 기도를 해보라며 지시도 해주었다. 쉐다곤 파고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사실 묘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지만 난 다 못 알아들었다. 하하.. 열심히 설명해준 묘에게 감사를.

사원이 꽤 컸는데 어느새 다 돌아보고 사원을 나섰다. 내려올때도 올라갈때와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이제 얼른 돈을 뽑아서 묘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친구이기에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었다. 이제 우리 점심 먹으러 가냐고 묻자 묘가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거기엔 ATM도 있단다.

“그래 좋아. 점심은 내가 살게!”

우리는 사원에서 조금 걸어내려와 택시를 타고 묘의 호텔로 향했다. 가는 동안 묘는 내가 묵는 호텔에 대해 욕아닌 욕을 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고. 다음번에 오면 자기가 묵는 그런 호텔에 묵으라고 했다. 나는 하하하 웃으며 그래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묘가 묵었던 지역은 너무 도시의 중심과 멀 뿐만 아니라 나는 관광객이니 관광지가 가까운 지역에 묵는게 나으니까 말이다. 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또 다시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호텔로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몸을 감쌌다. 역시 인간 최고의 발명품 .. 에어컨.

호텔 레스토랑은 1층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있었고 나는 바로 ATM에서 돈을 뽑았다. 부모님께 말은 못하고 지선이에게 빌린 20만원인가 30만원을 인출했던 것 같다.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하하. 이제 돈도 있고 무서울게 없다. 돈과 함께 당당해진 나는 묘에게 가서 “나 이제 돈 뽑았어. 내가 점심 살게! 많이 먹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묘가 이거 먹어봤어?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했고 그럼 그걸 시켰다. 무슨 음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나 혼자 먹었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음식들도 먹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더위를 식히며 좀 앉아있는데 갑자기 묘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 잠깐 방에 올라갈건데... 같이 갈래?”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가 방에 뭔가를 가지러 가는 줄 알았다. 그냥 정말 자기 방에 갈건데 (혼자 있기 좀 그러면) 같이 갈래? 이런 뜻인줄로만 알았다. 순진하고, 너무너무 피곤했던 나는 해맑게 웃으며 “아니, 나 여기서 기다릴게~ 갔다와!” 라고 말했다. 내 대답에 묘는 알겠다고 답했고 그는 방에 올라가지 않았다. 방에 다녀온다면서 안 가네? 아, 그제서야 나는 이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차렸다. 방에 올라갈래? 같.이. 라는 의미는... 와우.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졌던 묘에게 갑자기 심적 거리가 생겼다. 그것도 저~ 만치 멀리. 갑자기 마음 속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는 얘한테 밥 사주고 서류만 받고 바로 헤어진다!!’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다행히도 묘는 도덕적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한 뒤로 헤어질 때까지 전혀 그런 뉘앙스를 품기지 않았다. 내가 거절한 것에 대해서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행이지. 아무튼 우리는 (나만?) 어색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피곤하고 긴장되는 상태였는데도 밥맛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