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인레-2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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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투어의 멤버는 총 5명. 미얀마 여행을 찾아보니 다들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서 간다고 하길래 나도 카페에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어떤 분이 마침 16일에 보트 투어를 한다고 글을 올려놨길래 얼른 말을 걸었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한국에서 구하고 갔는지 인레 넘어오기 전에 중고폰으로 구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레가 워낙 작은 마을이기도 하고 마침 그 분이 묵은 숙소가 내 호텔과 가까워서 한 5분쯤 걸어서 그 호텔에 도착했다. 몸과 마음 모두 상태가 좋았다. 사실 야간버스가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일단 vip버스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의자도 푹신했고 꽤 넓어서 생각만큼 피곤하진 않았다. 예전에 유럽에 갔을 때 피렌체에서 파리로 넘어 갈 때 야간 기차를 탔는데 그 때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안좋았던 기억이 떠올라 걱정을 했는데, 오. 이정도면 야간버스는 꽤 탈만하다 싶었다. 그리고 아침에 샤워도 하고 밥도 먹었으니, 오늘 여행을 또 해나갈 힘이 솟아났다.

평소에 나는 정말 낯을 가리고 쭈뼛거리지만 여행지에서는 (특히나 혼자라면) 꽤 용감해진다. 뭐, 사실 사람 만나는데 딱히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호텔 로비에 들어가자 투어 멤버를 모은 주최자(뭐라고 부르지..?)가 있었다. 그 분도 혼자였고 나머지 세명은 곧 온다고 했다. 잠시 후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도착했다. 아,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그 아저씨가 어떤 모녀분을 또 동행으로 구해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오늘 그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모녀가 투어를 못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자신이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결원이 생기자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본인이 3명의 몫을 낸다고 하셨다. 보통 이 인레 보트 투어의 최대 정원은 5명인 것 같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5명을 꽉 채운다. 몇 명이 타든 보트 투어 비용은 같으니까. 그런데 1/5에서 1/3로 늘어나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먼저 그렇게 말씀해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모인 멤버는 나와 동갑인 친구 M, 40대 교사였던 H 아저씨와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보트를 타러 갔다. M이 미리 보트 투어를 예약한 덕에 바로 보트에 탈 수 있었다. 인레라는 큰 호수를 하루종일 돌다가 일몰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루종일 보트를 타고 다니며 뭘 할까? 싶었다. 출발하고 처음 5분정도는 신이 났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보트를 타고 달리니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바닷물이 아니라 찝찝하지도 않았고 인레는 양곤보다 훨씬 시원해서 딱 기분 좋은 정도였다. 그런데 음, 재밌는 건 그 잠시였다. 나중에는 보트 타는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좀 춥기도 했고. 변덕!

우리는 하루종일 이런저런 곳에 내려 구경을 했다. 왜, 이런 투어 가면 항상 코스는 정해져있지 않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실을 뽑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여러 수공예 작품들도 구경하고. 그리고 기념품 샵으로 이어지는 마지막까지. 볼 때는 우와 신기하긴 했지만 난 딱히 이런 것에 관심이 있지는 않아서 그냥 다 비슷비슷해보였다. 얼른 해가 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도 있었는데 바로 잎담배다. 잎을 말아서 담배를 만드는 그런거였는데 H아저씨가 흡연자라서 관심있게 보시길래 우리도 같이 구경을 했다. 거기 있는 사람이 직접 잎을 말아서 담배를 만들고 있었는데 담배에서 민트, 바나나 등의 맛이 난다고 했다! H아저씨가 이걸 사갈거라고 하셨고 나도 당시에 연락을 하던 사람이 흡연자였기 때문에 선물할까 싶었다.

“이거 한 번 펴 볼 수 있나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어떤 맛을 펴보고 싶냐고 하셔서 우리는 민트, 바나나, 또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뭐 이렇게 세 개를 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고 앞으로도 필 생각도 없다. 그런데 담배에서 바나나 맛이 난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으로 한 번 담배라는 것을 입에 대보았다. 올! 진짜 신기하게도 바나나 맛이 났다. 숨이 턱 막히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그닥 느낌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진짜로 바나나와 민트가 느껴진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H아저씨는 한 세트를 사셨고 나와 M은 반씩 나누어 가졌나? 아저씨가 한 세트와 반을 사고 나머지를 우리가 나눴나? 아무튼 나는 3개를 샀다. 기억에 남는 기념품은 이것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사지도 않았고 별 기억에도 안 남는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또 좀 큰 땅에 도착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또 구경할 거리들이 있다고 해서 보트 운전 기사와 몇 시에 보자며 약속을 하고 걸어 올라갔다. 시원한 공기가 기분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구경을 했다. 나랑 동갑인 M은 혼자 동남아 여행 중이라고 했다. 거의 한 달 정도 여행중이었는데 미얀마가 마지막 일정이라고 했던 것 같다. M은 현대 미술을 하는 학생이었는데 그걸 알고나니 그의 긴 머리가 좀 예술적으로 보였다. 예술가의 느낌이 있었다. H아저씨는 강원도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처럼 방학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말씀을 들어보니 이곳저곳 혼자 여행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거기서 뭘 본 것 보다는 동행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구경을 다 하고 내려와 드디어 점심을 먹었다. 수상 레스토랑이었는데 해산물 요리를 팔았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시켰다. 아, 카레를 시켰는데 오! 꽤 맛있었다. 카레를 2갠가 시켰는데 맛이 다 달라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어찌됐든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떠돌아야 했기에 좀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오늘 저 보트 운전하는 애는 우리가 싫을거야.”
“왜요?”
“우리가 계속 빨리 빨리 보고 다음 장소에 가자고 해서. 이제 더 갈 곳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셋 다 딱히 이런 가게들에 관심이 많이 없어서 그냥 쓱쓱 둘러보고 지나쳤기 때문에 정말로 이제 갈 곳이 없을 법도 했다. 우리는 최대한 천천히 나가자고 했다. 여유롭게 음료까지 한 잔 마시고 다시 또 다음 장소로 갔다. 어떤 사원에 갔는데 여긴 꽤 큰 사원이라서 많이 돌아보았다. 이렇게 호수 안에도 사원이 있고 가게들이 있다니, 신기했다. 수상마을. 베트남의 닌빈이 떠올랐다. H아저씨가 꽈배기 과자를 사셔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이상 뭘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그냥 비슷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보트 운전 시가는 우리를 작은 사원이 있는 한적한 땅에 내려다 주었다. 이제 해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정자에 앉았다. 아-.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오래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낯을 딱히 안 가리는 편이라 바로 전 도시, 양곤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휴대폰 잃어버린 분치고는 되게 해맑으시네요.”

내 이야기를 들은 M의 첫마디였다.(ㅋㅋㅋㅋㅋㅋ) 뭐 지금 멀쩡히 여행을 잘 하고 있고 지나간 일 때문에 또 남은 여행을 망칠 순 없으니까.

“진짜 다행히도 같이 다니던 미얀마 친구가 중고폰 사는 것도 도와주고 변호사한테 증빙 서류도 받아줬어요.”
“그거! 전형적인 사기 수법인데!”

M이 말했는지 H 아저씨가 말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무튼 이게 사기 수법이라고 했다. 들어보니 딱 그 사원, 술레 파고다 주변에 이렇게 여행 가이드를 자처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처럼 강 반대편으로 가서 돈을 뜯거나 아니면 하루가 끝나고 나서 투어비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런 사례가 아주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유튜브에 이런 사람 조심하라며 영상도 많이 있다고 한다. 나는 왜 몰랐지!?

“헉, 진짜요!?”

“네, 그런데 걔도 처음에는 그렇게 접근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쌤이 폰을 떨어뜨려서 불쌍해서 도와준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진심으로 도와준거죠.”
“그래도 신사네요, 다행이에요. 뭐 별다른 일이 없어서. ”

“아, 네.. 진짜 그렇네요.”

이 말을 들으니 묘의 얼굴이 떠오르며 배신감이 느껴졌다. 나는 좀 팔랑귀라서 저 말을 들으니 정말 묘가 나에게 사기를 칠 목적으로 접근했다가 불쌍해서 동정심으로 도와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순진했던 걸까, 정말 호의로 나에게 여행을 같이 하자고 했고 진심인 줄 알았는데. 물론 묘에게 직접 들은건 아니니 그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음.. 글쎄다. 묘하게 허탈했다. 그의 인스타 디엠이 조금 부담스러워 답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메시지는 앞으로도 읽지 않음 상태겠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