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 인류 _ 리사 이오띠
202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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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늘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고, 언제든지 내 생각들을 픽셀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스마트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상하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고, 그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려고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꿈, 도망치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 꿈, 하지만 깨어날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p.9)
기술이 우리 손에 낯선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쥐어준 이래로 불편함이나 피로, 노력은 모두 우리가 더 이상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경험이 되었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순과 무질서와 신비로움, 타인과의 친밀함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과의 친밀함마저 회피하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p.20)
예전에 우리는 해답이 어디에 있을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어떤 것의 가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일생 동안 몇 백만 번이나 추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즉시 해답을 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성을 행사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고하는 기계인 뇌에는 아주 귀중한 연습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하는 기계이기를 원하죠. (p.134)
우리는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모든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이 풍요로워진다고 착각했고, 키보드를 클릭할 때마다 대뇌 피질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존재의 모든 순간을 자극과 재촉으로 채웠고, 우리는 혼자 있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멈춤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그 몇 초도 문자를 찍을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괴롭기 그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p.160)
나는 하이퍼커넥션의 문제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신성시한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항상 빨리 가야 하고, 메시지에 즉시 응답해야 하고, 자극에 바로 반응해야 하고, 지속적인 재촉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학 관계에 해당하지 않은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처럼, 시간 낭비인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p.164)
"우리가 게시판을 계속해서 스크롤하고 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스키너 박사의 비둘기처럼요." 얄궂게도 우리는 소셜 미디어, 슬롯머신, 포커, 사랑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 끌린다. 불확실성은 가장 강력한 최음제다. 우리는 행동보다 잠재력에 더 매료되며, '성격'이나 '매력', '자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p.198)
나는 체계적인 사람들의 엄격함과 계획성이 늘 부러웠다. 그것이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할 새장이 된다 해도,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선택을 단순하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p.202)
오히려 대부분은 훌륭한 아이들이지. 그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을 뿐이지. 아이들은 머릿속에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이해하고 말고는 상대방의 문제인 거야. 이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글자를 찍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전화로 말하는 것보다 문자를 보내는 게 더 빠른 세대야. 아이들은 채팅을 하는데 채팅에서는 더 이상 구두점을 넣지 않지. 작문을 할 때도 마찬가지야. 아이들의 작문을 읽을 때는 문장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하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찾아야 해. 진짜 중노동이지. (p.206)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더 이상 "나는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 어떤 대답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검색 엔진은 네트워크의 심연을 파헤쳐 우리에게 정답을 내놓는다. ...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p.215-216)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해서 집이 아니듯이, 정보를 쌓아 올렸다고 해서 과학이 아니다. (p.218)
내가 최근에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은 '그걸 도대체 어디서 읽었더라?'였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왜 그것을 읽게 되었는지도 당연히 기억나지 않았다. ... "인터넷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죠.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뭇가지도 보지 못합니다. 단지 잎사귀, 잎맥, 잎자루만을 볼 뿐입니다. 전체 그림은 모르면서 세부적인 것들만 보는 것이죠." 우리는 아는 것과 안다는 느낌을 맞바꾸었다. (p.223)
이용 가능한 정보가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빠르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단순화하여, 우선순위를 따라가면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읽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쓸 수 있는 시간 사이의 타협의 한 형태입니다. 깊이 읽기를 담당하는 회로가 손실될수록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조급해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으러 갑니다. 그들은 빠르고 친숙한 정보를 원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다른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죠." (p.244)
한때는 값비쌌던 디지털 기기의 가격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내려간 지금, 새로운 부의 상징은 소셜 미디어를 버리고, 이메일에 바로 답장하지 않고, 최신 아이폰 모델로 무장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플랫폼이나 디지털 기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제 '낙오자'의 일이 되었다. 기사는 정확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탄산음료를 덜 마시고 담배를 덜 피우는 것처럼"이라고 썼다. ... 디지털 기기 중독이 사회적 불평등을 만드는 결정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p.261)
사람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는지가 새로운 계급의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p.263)
메시지나 이메일에 언제나 곧바로 응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답장은 나중에도 쓸 수 있어요. 대부분의 경우, 당장 답을 해야 할 정도로 급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매번 뭔가가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즉시 구글에서 정보를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p.2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디지털 무굴제국의 허를 찌를 생존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제는 주변에 누구를 둘지, 무엇을 둘 지를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우리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 하고, '필터 버블'도 터트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심을 키우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의심과 불확실성이야말로 언제나 자유로운 정신의 표지였으니 말이다. (필터 버블 :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이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에 따라 선별된 정보에 둘러싸이게 되는 현상) (p.283)
캐서린 프라이스의 <스마트폰과 헤어지는 법>에서 스마트폰은 '"역기능적 관계에 있는 전형적인 파트너로, 나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나를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도록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약간의 쾌락이 깃들어 있는 자해. 바로 내 특기다. 나쁜 점은 스마트폰과 헤어져 있는 이별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좋은 점은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아픈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우리가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지쳤을 때, 우리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기 위해 돌아올 때, 아니면 단순히 그 아픈 사랑이 더 이상 재미가 없을 때 말이다. 놀랍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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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책 정말 좋다.
요즘 나는 스마트폰과 거의 한 몸이 되었다 싶을 정도로 손에서 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내가 그 한심한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람을 끄고 그대로 인터넷 서핑을 했다. 밤새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 아니 사실 재미있는 일, 나랑 관련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냥 일어나기 싫어서 한참을 그 작은 공간 안에서 허덕였다. 그리고는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꼭 무언가를 틀어놓았다. 요새 워낙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등이 잘 되어있다 보니 그냥 아무거나 틀어 놓고 일상을 보냈다. 그 영상의 내용이 딱히 궁금해서도 아니고 그 내용에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소음이 필요했던 거다. 더 웃긴 건 패드로 그 영상을 틀어놓고 나는 휴대폰으로 다른 짓을 한다는 거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스스로가 참 한심하고 미련해 보였지만 '현대인은 다 이럴걸?'하고 못 본 척 넘어갔다.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
나 스스로도 나의 짧아진 집중력을 느끼고 있었다. 도무지 어떤 일에 진득하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조금 읽다가도 괜히 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질 않나, 유튜브에 괜히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진 않았나 새로고침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또 그 똑똑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것들은 어찌나 나의 눈길을 끄는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고쳐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순간의 쾌락이 즐거웠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었는데, 일단 "산만함의 시대, 우리의 뇌가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부제목이 와닿았다. 8초. 나는 처음에는 속으로 '에이~ 8초는 아닐걸?'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난 지금은 '8초도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다 옮겨 적지 못 한 문장들도 너무 많다. 이 책을 소장하고 싶다.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다 읽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이다. (같이 잘 살고 싶으니까.)
책을 읽고 바뀌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진심으로 바뀌고 싶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 그 작은 세상에 종속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매너모드를 유지하던 폰을 소리 모드로 바꾸었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혹시나 무슨 알림이 왔을까 궁금해서 계속 주기적으로 확인을 하게 되는데, 소리를 해 놓으면 소리가 나지 않으면 휴대폰을 볼 이유가 없다. 예전에도 비슷하게 '애초에 아예 신경을 끄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무음으로 해 본 적도 있는데 그때는 오히려 혹시?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더 많이 확인했다. 소리를 켜놓고 지내는 지금 어떤 알림 소리가 들리면 '별로 안 중요한 걸 거야. 보지 말자.'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쓸모없는 알림들이 많이 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나오는 메리언 울프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철학이나 신학 에세이 같은 진지한 내용의 책을 골라 읽고, 저녁에는 소설을 읽는다고 했다. 물리적인 글이 적힌 책을 하루의 시작과 끝에 놓고, 그 가운데 하루를 품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나의 하루를 품는 도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어제부터 실천 중이다. 방학이라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나의 하루를 품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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