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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리뷰/독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2 _ 이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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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2 _ 이미예

2021.11.7.



*

“저걸 봐, ‘월요병 치료제’라는 게 있어. 새로 나온 자양강장제인가 봐.” 모태일이 매점의 메뉴판을 살펴보다가 갈색 병에 담긴 음료에 관심을 보이자, 달러구트가 선뜻 지갑을 꺼냈다. … 평범한 자양강장제처럼 생긴 어두운 색상의 병 안에는 걸쭉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뚜껑에 글자가 있어. ‘오늘만 출근하면 3일 연휴라고 상상하면서 들이키세요.’라고 되어 있네.” 모태일은 말이 끝나자마자 한 병은 통째로 들이켰다. 페니도 ‘월요병 치료제’의 뚜껑을 돌려 열었다. 페니가 가진 병뚜껑에는 ‘부장님이 오늘 출근을 안 한다고 상상하면서 들이키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병의 옆면에 붙어 있는 성분표에 따르면 ‘해방감 0.01%’ , ’안도감 0.005%’등 쥐꼬리만 한 감정이 들어 있을 뿐이었는데, 아마 뚜껑위의 메시지만 다르고 성분은 모두 같을 거라고 짐작했다. … “역시 월요병에는 약이 없군.” 모태일은 깨달음은 얻은 수도승처럼 근엄하게 말했다. (p.57-59)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요?”
“그래, 사람들은 이따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피곤하지 않은데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곤 한단다. 그렇게 잘 떄는 어떤 꿈도 필요 없고, 그저 세상과 완전한 단절을 원하게 되지. 그런 손님들은 정처 없이 길을 걷거나, 우리 백화점뿐만 아니라 어떤 가게에도 들어가지 오도카니 서 있곤 한단다. 자 여기까지 들었으니 그들을 이곳까지 인도한 자들이 누군인지 알겠지?”(p.245)

“빨래는 저렇게 푹 젖어 있다가도 금세 또 마르곤 하지요. 우리도 온갖 기분에 젖어 있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괜찮아지곤 하지요. 손님도 잠깐 무기력한 기분에 젖어 있는 것뿐입니다. 물에 젖은 건 그냥 말리면 그만 아닐까요?”
“어떻게요?”
손님이 관심을 보이자, 그 틈을 놓지지 않고 달러구트가 초대장을 내밀었다.
“작은 계기만 있으면 된답니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잠깐 바깥을 산책하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행동으로 기분이 나아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추억’을 테마로 한 꿈을 통해서 손님의 기분이 한결 나아질 수 있을 것 같군요. 자, 속는 셈치고 파자마 파티에 와주시겠습니까?” (p.246-247)

예기치 못한 무기력이 여자를 집어삼켰다. 돌아보면 자신 말고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하루하루였다. 35년간의 직장생활이 끝났다는 것과 텅 빈 둥지가 된 집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는 자각이, 한꺼번에 단단한 고무공처럼 사방에서 튀어와 여자의 가슴팍을 때렸다. … ‘내 삶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집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는 열심히 살아야지, 애들 전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힘내야지, 막내가 장가갈 때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지 하고 목표 지점을 정확히 조준하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던 날들이 그립기까지 했다. 이제 뭘 위해, 어떤 날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p.247-248)

언제나 인생은 99.9%의 일상과 0.1%의 낯선 순간이었다. 이제 더이상 기대되는 일이 없다고 슬퍼하기엔 99.9%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도, 매일 먹는 끼니와 매일 보는 얼굴도. (p.278)

어떤 기억도 추억이 되고 나니 사소한 기쁨과 슬픔 따위는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이 추억은 분명 내 것이 맞는데, 어디에 있다가 어젯밤 꿈에 나에게 다시 돌아온 걸까?” (p.280)

‘지금의 행복에 충실하기 위해 현재를 살고 /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을 위해 미래를 기대해야 하며, /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행복을 위해 과거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p.285)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동굴을 벗어난 이후에 언제가 가장 좋았어요?”
“지금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오늘, 평생 기억할 만한 좋은 추억이 생긴 것 같아요. 앞으로 좋은 꿈을 꿀 때, 배경은 항상 지금 앉아 있는 이 공간일 거예요.” (p.306-307)


**

정말 기다렸던 책!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사실 난 1편을 넘어서는 2편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러구트는 2편도 1편에 버금가게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환상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과 그걸 풀어내는 능력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

2편도 1편과 마찬가지로 꿈 백화점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1편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비고와 1번 손님의 이야기도 풀어냈다. 특히나 많이 인용한 330번 손님의 이야기는 엄마가 생각났고 또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엄마 인생의 약 절반밖에 알지 못한다. 어릴 때는 기억하지 못하니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그냥, 엄마가 이런 생각이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
목표 지점을 정확히 조준하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던 날들이 그립다는 말이 참 공감이 됐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난 좀 스스로를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의 나는 그 채찍질에 순응하며 잘 살아간다. 그러다가 한번씩은 번아웃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올 봄-여름이 그랬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한번 무기력에 잠식되면 벗어나기는 꽤 힘들다. 작은 계기가 필요하다고 달러구트는 말하지만 나의 경우 그것이 좀 힘들었다. 작은 계기를 찾는게 힘들었다. ‘결국 그걸 해서 뭐해..’이런 생각에 도달하곤 했으니까. 마음이 힘들때면 나는 항상 과거를 헤엄치곤 했다. 좋았던 추억, 즐거웠던 추억만을 찾아 헤맸다. 사실은 그 순간도 좋기만 하진 않았을텐데.. 그래서인지 어떤 기억도 추억이 되고 나니 사소한 기쁨과 슬픔 따위는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언제 또 다시 무기력이 찾아올지, 어떻게 나는 그것을 헤쳐나가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미래의 내가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3편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3편도 나올까? 2편이 전작만큼이나 너무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환상의 세계가 3편에서도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오랜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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