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하노이-1 (1.12.)

2020년 1월 12일 오전 12시,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아, 이 베트남 공기의 냄새. 내가 사랑하는 이 냄새! 내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베트남 냄새라고 칭하는 그 냄새가 내 코를 파고들었다. 뭔가 그 공기 특유의 뭔가가 있단 말이지. 나는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하고,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도시, 나의 최고 애착 도시, 하노이! 하필이면 도착한 날 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는데, 아니 아무래도 좋았다. 하노이라면 뭐든지 좋으니까!

 

하지만 하노이에 대한 나의 이런 사랑과는 다르게(?) 혼자 이 곳에 머무르게 된 건 처음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문 때는 학교에서 함께 왔고, 세 번째는 베트남 지인들과 함께 있었고 네 번째는 엄마와, 다섯 번째는 직장 동료들과. 그래, 나는 여섯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혼자 이 곳에 오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니였다. 원래 나의 계획은 하노이에서 탕과 하루를 노는 것이었다. 사실 부산에서 미얀마까지 항공권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나는 탕이 그립기도 했기에 부산-하노이로 왕복 항공권을 끊어서 하노이에서 미얀마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처음에는 '좋아!'라고 했던 탕이 여행 며칠 전에 자기는 태권도 대회가 있다며 만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같은 도시를 여섯 번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도시라면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이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하노이'니까 나는 뭐래도 좋았다. 탕을 만나지 못하게 된 건 너무 아쉽지만 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도시에서 나 혼자 하루를 보낸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이번에 내가 잡은 숙소는 에어비앤비.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로컬 느낌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잡은 숙소였는데, 오우. 생각보다 방이 너무 작았다. 내가 사진을 대충 보고 넘겼던 건지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아니, 이 가격이면... 호텔을 가지! 하는 마음에 조금 울컥했지만 에이, 뭐 겨우 이틀 밤이니까. 하는 마음에 또 금세 괜찮아졌다.

 

내가 하노이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호안끼엠 호수이다. 사실 여행자들, 특히나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곳을 알 것이고 그 주변에 묵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이번 숙소를 잡을 때 가장 염두에 뒀던 것이 호안끼엠과의 거리였다. 호안끼엠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오면 따히엔 맥주 거리가 있다. 이 주변에 백패커스 숙소가 많다 보니 밤이 되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곤 한다. 밤에 도착해서 배가 고팠던 나는 맛있는 것도 먹고 이 밤의 거리를 즐기기 위해 바로 맥주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맥주 거리에는 이미 한차례 사람들이 지나간 후였다는 것이다. 비도 조금씩 내리니 장사는 이제 문을 닫는 분위기였고 길거리에는 취할 대로 취한 사람들이 친구의 부축을 받아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 내가 기대한 분위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뭔가 맥주 한 잔과 맛있는 음식을 먹길 바랐는데 지금 이 시간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면 (나의 기준에) 굉장히 엄한 클럽이나 바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 정도까지 엄두도 안 났고, 나는 다음날을 제대로 보내고 싶었기에 정말 가볍게 배만 채우기로 했다. 

뭘 먹을까 하고 고민하며 돌아다니다가 나의 눈길을 끄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반 미! 반 미(banh mi)를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시간대에 그 먹음직스러운 냄새와 모양새라니! 사실 길거리 노점 음식은 배탈이 날까 봐 안 먹는 편인데 너무 배가 고팠고 그 시간에 딱히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그래도 나름 베트남어를 사용해보겠다고 더듬더듬 베트남어로 '못까이!(하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지글지글 무언가를 볶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빵에 이것저것을 넣고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려갔다. 고수 넣을 거야? 소스는 다 뿌릴까?라는 말에 끄덕끄덕 했더니 어느새 맛있는 반미가 완성되었다. 

 

"바오 니에우?(얼마예요?)"

"80,000동(한국 돈으로 약 4,000원)"

 

네? 기껏해야 3만 동(약 1,500원)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처음엔 그런 말 없었잖아요? 내가 길거리 음식을 꺼리는 이유는 첫 번째가 위생이고 두 번째가 가격이었다. 가격이 명시된 곳이면 괜찮지만 가격이 적혀있지 않은 곳은 나에게 얼마를 부를지, 얼마가 적당한지 몰랐기에. 그리고 나는 흥정에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길거리 노점 음식을 잘 먹지 않으려는 편이다. 그런데 아저씨? 8만 동이라뇨! 이미 음식을 받았으니 나는 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케이, 하며 8만동을 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낼 때는 별 생각을 못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8만동... 8만동... 나는 하노이에서 쓸 돈을 얼마 환전해 오지 않아서 돈을 아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웬걸. 반미가 너무 맛있어서 용서가 됐다. 그 반미는 내가 여태껏 먹었던 반미 중에 최고였다. 다른 손님한테는 무슨 고기 넣어줄까? 물어도 보던데 나는 그 아저씨가 그냥 '알아서' 만들어 준 반미였다. 그래서 무슨 고기인지,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도 몰랐지만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춥고 배가 고파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지, 하노이니까 괜찮지.

 

우산이 없지만 비가 와도, 예상과는 너무 다른 숙소를 만나도, 터무니없이 비싼 반미를 먹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도 용서가 되는 도시, 하노이니까. 다 괜찮다!

 

 

내가 먹은 것 중 가장 어처구니 없이 비쌌던 반 미. 하지만 가장 맛있었던 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