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Prologue)

나의 여행은 잃어버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엥? 내 이어폰 어디 갔지? 야 망했다! 나 이어폰을 캐리어에 넣고 부쳤다!"

2020년 1월 11일 저녁, 대만 여행을 가는 가은이네와 시간이 맞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짐을 부치고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어폰을 넣고 수하물을 보냈다! 아니, 장장 4시간을 가야 하는데 이어폰이 없다니... 밥이야 맛있었으니 꿀떡꿀떡 잘 넘어갔지만 한편으로는 '아 어쩌지? 지금 캐리어 다시 꺼내 달라고 해서 꺼낼까?', '아니야 이어폰 없이 갈 수 있을 거야! 자면 되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 없이 비행기를 타다니... 휴대폰에 다운로드 받아 온 노래들과 넷플릭스 영상들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출국 수속을 밟으면서도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나는 이어폰을 샀다. 공항 내 편의점이라 그런가 선택지가 몇 가지 없었고 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사실은 베트남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열었는데 이어폰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짐 정리하면서 잃어버렸나? 그래도 한국에서 이어폰 사오길 잘했네, 여행 내내 써야 하니까. 그래, 처음에는 이런 작은 실수도 귀여웠고 재미있었다. 누구나 여행에서 작은 해프닝 정도는 있지 않은가.
근데 결국 그 이어폰은 음질이 최악이였고 (거의 뭐 내가 초등학교 때 쓰던 이어폰 수준이었다.) 원래 쓰던 이어폰은 나중에 야간 버스를 타고 가던 중 패딩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아아, 바보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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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나의 첫 '혼자' 여행이었다. 항상 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고, 하노이는 혼자 간 적도 있지만 현지에 친구가 있으니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여행이었다. 혼자 해외여행이라.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고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이 여행을 무사히 잘 끝내고 돌아온다면 엄청난 성취감과 내가 무엇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흠뻑 젖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행은 이래서 여행인건가. 어디 하나 예상한 대로 된 일이 없었다. 아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미얀마에 가는 길에 친구가 보고 싶어서 들렸던 하노이에서는 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버리질 않나, 미얀마 첫 도시에서 폰을 잃어버리질 않나, 처음 만난 동행과 아슬아슬한 이야기도 하고, 기대했던 요가 수업을 갔더니 선생님이 안 나와서 수업이 취소되고, 세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호텔 직원의 말을 듣고 공항에 갔더니 15분 만에 모든 수속이 다 끝나버리는 등... 예상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여행이 썩 마음에 든다. 아니, 나는 이 여행의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시간을 사랑한다, 라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나는 그때 그 시간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예측 불가한 일들 덕분에 나는 인생 쌀 국수 가게도 찾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도 못 가볼 경찰서를 미얀마에서 가보았다. 또, 툭툭이 기사 친구를 사귀기도 했으며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기에, 나의 여행기를 조금 써 내려가 볼까 한다.


※정보성 글이 아님. 글을 쓰는 목적은 최대한 자세하게 이 여행을 기록 하기 위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