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하노이-3 (1.12.)

롱비엔 다리로 가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지도 앱의 안내를 따라 걷다 보니 성 요셉 성당이 나왔다. 때마침 미사 시간이라 잠깐 앉아서 알아듣지도 못 할 미사를 들었다. 성당을 나와 다시 걸었다. 지도 앱은 롱비엔 다리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안내했지만, 나는 안 가본 골목골목을 가보고 싶어 일부러 경로를 이탈했다. 뭐, 결국 롱비엔 다리에만 도착하면 되는 거니까.

 

가다 보니 지도에 하노이 먹자골목이라고 하는 곳이 나왔다. 나름 푸드코트 식으로 여러 가게가 모여서 골목을 이루고 있었는데 또 이걸 지나칠 순 없지 않은가.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뭘 팔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았다. 현지인이 많았고 꽤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쩨를 파는 곳도 있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포기했다. 재료가 너무 많았고 나는 거기서 제대로 된, 내가 먹고 싶은 쩨를 주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종원 아저씨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우렁이 국수, 분 옥이었다. 골목의 제일 안 쪽까지 들어가니 분 옥이라고 크게 적힌 글자가 보였다. 그래, 점심은 이 골목에서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술술 잘 풀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식재료 시장 같은 곳도 지났다. 평소 자주 구경했던 36거리와는 달랐다. 36거리는 조금 더 정돈되고 다양한 물건을 팔고, 외국인이 붐볐다면 이 시장은 (이름도 모르겠다.) 식재료를 주로 다루고 정말 현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신기했지만 생고기가 너무 많이 보여서 얼른 시선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 거리를 지나쳤던 것 같다. 

 

마침내 내가 인스타에서 본 카페에 도착했다. 그 카페는 외관부터 아주 화려했다. 사실 카페를 목적지로 찍고 오면서 구글 후기를 보니 비싸다는 평이 많아서 고민이 되었다. 나는 하노이에서 겨우 이틀만 있을 거라 돈을 많이 환전하지 않았다. 어차피 관광지를 가지도 않고 식비 정도만 쓰면 되니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점점 늘어났기에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싶진 않았다. 물론 뷰는 좋겠지만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가는 거라면... 나는 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화려한 카페는 입구만 구경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다음에 돈 많을 때 와야지. (사실 돈 많아도 여기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인생 샷에 그렇게 연연하는 편도 아니고 그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여러 개 더 사 먹겠다.)

 

곧바로 롱비엔 다리로 올라갔다. 롱비엔 역이 있고 그 앞으로 롱비엔 다리(철교)가 쭉 뻗어 있었다. 하노이 시내에서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 롱비엔 역으로 도착한다고 한다. 그런데 롱비엔 역에서 다리 반대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니 그곳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뭐라 뭐라 말하며 나를 막았다.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시내에서 롱비엔 역까지 도착한다는 거지? 아무튼 나는 롱비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전에 투어 가이드한테 들은 건데 이 다리는 프랑스 에펠탑을 만들고 남은 철, 쇠붙이로 만든 거라고 한다. 그때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내가 정확히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 말고도 어떤 외국인 여자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 주고 나도 사진을 부탁했다. 서양인이라서 좀 걱정이 됐지만 생각보다 사진은 괜찮게 나왔다. 여행 가면 한국 사람에게 사진을 맡기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서양 사람들은 사진을 약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장 찍고 굳~이라며 카메라를 건네주는데, 한국인은 기본이 두 장이고 찍고 나서는 한 번 확인해보라며 사진이 잘 나올 때까지 찍어준다. 역시... 인터넷에서도 이런 말들이 떠도는 걸 보면 나만 느낀 게 아닌가 보다. 쭉 뻗은 철교를 따라 조금 더 걷고 싶었는데 살짝 추웠기도 했고 쇼핑몰 모델 같은 사람이 나타나 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쇼핑몰 배경에 나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독 베트남에서는 쇼핑몰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군데군데서 많이 보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말이다. 하노이, 호찌민, 다낭이 다 유명하고 사람이 많은 도시여서 그런가? 

 

롱비엔 다리에서

 

다리를 내려오니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아까 그 카페를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아직 오늘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나는 커피를 달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베트남에 오면 괜히 커피를 많이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주변에 어떤 카페가 있을까 찾다가 카페 지앙을 발견했다. 전에 왔을 때 에그 커피를 맛있게 마신 경험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또 오랜만에 베트남에 왔는데 에그 커피도 마시고 가고 싶었다. 전에 갔던 지점은 호안끼엠 주변에 있는 곳이어서 내부도 넓고 관광객도 좀 많았는데 여기는 굉장히 작고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시내 외곽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인지 내가 들어서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이 재밌었다. 자리에 앉으니 주인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또 뭐가 있나 살펴보다 신기하고 생소한 커피를 발견했다. 나는 이전까지 이 두 가지를 합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바로 커피와 요거트이다. 요거트 커피라니... 상상이 안 됐다. 맛이 있긴 할까? 괜히 모험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왕 먹는 거 먹어 본 에그 커피보다는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아잉 어이, 쪼 또이 까이 나이.(저기요, 저 이거 주세요.)"

 

엉터리 문장이지만 사장님은 잘 알아들으셨다. 왜냐하면 내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터리라도 베트남어로 이야기하니 가게 안에 있던 한 무리가 나를 아주 대놓고 쳐다보며 뭐라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별 신경은 안 쓰였다. 쟤들도 하루 중 신기한 거나 재밌는 거 하나 정도는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커피를 기다리며 점심으로 뭘 먹을지 생각했다. 아까 본 분 옥을 먹고 또 뭘 먹을 수 있을까? 너무 배불러서 더 못 먹겠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했다. 나도 참... 

 

카페 지앙의 요거트 커피. 처음 맛 보았는데 꽤 괜찮았다.

 

드디어 요거트 커피가 나왔다. 일단 보기에는 평범했다. 딱 말 그대로 요거트와 커피를 합친 그 자체. 숟가락과 빨대가 함께 나왔는데 일단 숟가락으로 두 개를 섞어 보았다. 이게 마셔지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커피와 잘 섞으니 어느 정도 음료 같은 질감이 되었다. 숟가락으로 떠서 첫 입을 맛보았다. 오? 무슨 맛일까 상상을 해보아도 감이 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요거트와 커피가 합쳐져서 뭔가 특별한 제3의 맛을 만들어 낸 건 아니고 딱 요거트 맛과 커피 맛이 함께 느껴졌다. 근데 그게 나름 괜찮았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시켰는데 못 먹을 정도의 음식이 나온 게 아니면 그 정도면 성공이지 뭐. 이것도 또 좋은 경험이니까 말이다. 커피를 먹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자 마음먹었다. 나는 오늘 따로 일정이 있는 게 아니니까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현지인처럼 카페에 앉아 시간 보내기. 그렇게 앉아 있는데 사실 금방 지루해졌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기에는 그 카페 안에 담배냄새가 너무 심했다. 베트남은 아직 실내 흡연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은 건지 사람들은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적당한 속도로 커피를 마시고 카페를 나왔다. 요거트 커피, 꽤 괜찮은데. 다음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한 번 정도 먹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