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하노이-7 (1.13.)

오늘은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미얀마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숙소 로비에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는 4시 30분 출발이었고 올드타운에서 공항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므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하면 적당했다. 오늘도 역시나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호안끼엠 호수. 이제는 오래 살던 동네처럼 아주 익숙한 곳이다. 오늘도 역시나 쨍-하게 맑지는 않았고 조금은 흐린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다.

 

성 요셉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성 요셉 성당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뻗어있는 골목은 내가 하노이에서 꽤 좋아하는 골목이다. 뭐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골목은 아늑하고 베트남스러운 느낌을 준다, 나에게는. 이 골목에 있는 임프레시브 부티크 호텔에서 두 번이나 묵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아침의 하노이를 구경하다가 새우 국수를 먹으러 갔다. 성 요셉 성당에서 왼쪽으로 쭉 가면 있는 곳인데, 그 길의 끝 모퉁이에 자리 잡은 곳이다.

성요셉 성당

 

이 곳은 2019년에 엄마랑 왔을 때 우연히 발견한 집이다. 난 여행지에서 만큼은 실패를 하고 싶지 않기에 미리 좀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음식도 그렇다.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맛집만을 찾아다닌다기보다는 적어도 맛없는 걸로 배를 채우는 실패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난 맛없다의 기준이 꽤 낮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음식점을 찾을 때는 미리 찾아봐둔 몇 개 중에서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집은 그냥 지나가다가 나의 눈길을 끈 집이었다. 무슨 음식을 파는지 글자는 읽을 수가 없었지만 사진이 꽤나 맛있어 보였다. 식당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 음식 냄새도 그럴듯했다. 그 당시 택시 투어를 다녀와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 여기 왔던 것 같은데 국수가 입맛에 꽤 잘 맞았고 약간은 끈적한 국물이 쌀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전에 동생이 하노이 여행을 갈 때도 추천을 해 줬는데 동생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 뒤로 나의 '하노이에 오면 한 번 씩 먹고 가야 하는 음식 리스트'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번에도 빠트릴 수 없었다. 약간은 쌀쌀한 공기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얼른 먹고 싶었다. (식당 이름은 Quán Út Còi Bánh Canh Ghẹ이다.)

 

아직 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집이 아닌지 아침에 방문하니 외국인이 나 밖에 없었다. 그 직원들도 이 외국인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영어를 가장 잘하는 직원이 와서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나는 이 집의 대표 메뉴를 하나 주문했다. 내가 어설픈 베트남으로 이거 하나 달라고 하니 직원은 순간 당황하더니 웃으며 다른 직원에게 뭐라고 말했다. 얘 베트남으로 말해! 이런 거겠지? 그리고 또다시 나에게 물었다. 

 

"~!@#$% 넣을까요?"
"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정도 눈치는 있다. 고수를 넣을까 말까 물어보는 거겠지? 나는 이제 고수 정도는 껌이지, 하는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잠깐 기다리니 따뜻한 국수가 나왔다. 정확한 음식의 이름은 모르지만 해물 국수인 것 같다. 통통한 새우와 게살 수프처럼 끈적한 국물, 그리고 식감을 더해주는 아삭한 숙주까지! 빨간 국물로 약간 얼큰한 맛도 있어서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맛이랄까. 오랜만에 먹으니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맛과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아침이다.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10시 30분까지 뭘 한다, 고민하다가 어디를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해서 그냥 올드타운에서 시간을 보내자 싶었다. 그래서 호안끼엠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콩 카페에 들어갔다. 베트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들 중에 하나가 콩 카페인데, 유명한 국민 카페인만큼 어디서나 콩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콩 카페에 왔으니 코코넛이 들어간 커피를 마실까 그냥 카페라떼를 마실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따뜻한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윗 층으로 올라가 호안끼엠이 잘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하노이의 아침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오토바이들의 모터 소리와 쉴 새 없이 들리는 경적소리. 아침에 호텔에서 눈을 뜨고 이 소리들이 들려올 때면 난 내가 진짜 베트남에 있구나, 하고 느끼곤 한다. 베트남 여행을 떠올릴 때면 이 소리가 참 많이 생각난다. 

 

콩카페에서 내려다본 호안끼엠 호수. 그리운 소리.

 

커피를 마시다 보니 어느덧 마사지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 마사지샵으로 갔다. 어제 그분이 해주면 좋을 텐데, 기대를 했지만 오늘 마사지를 해주실 분은 다른 분이었다. 돌을 데워서 하는 거라 스톤 마사지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전신 마사지이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고 마사지 베드에 엎드려 누웠다. 몸을 오일로 정리하고 뜨끈한 돌을 몸에 얹어주는데 처음 느낀 건 '오우, 뜨겁다.'였다. 못 견딜 정도로 뜨겁다는 말이 아니라 내 예상보다는 뜨거웠다. 돌을 몸에 얹은 채로 한 부분씩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아팠다. 스톤 마사지는 뜨거운 돌을 얹어 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돌로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였다! 그분은 굉장히 열심히 몸 구석구석을 돌로 마사지해주셨는데,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 내가 몸이 많이 굳어있어서 아픈 건가? 아팠다. 근데 또 아프다는 말을 못 하겠는 거다. 왜 한국인들이 동남아에서 마사지 받을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세게 해 달라는 말이라고. 아프지 않으면 마사지가 덜 된 것 같다고 생각해 다들 아픔을 참고 마사지를 받는다고 한다. 나도 전형적인 한국인인가 보다. 아프다고 말하면 그 강도가 약해질 것 같고 마사지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차마 아프다고 말을 못 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니 시원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우, 아프기는 진짜 아팠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스톤 마사지는... 글쎄.

 

한 시간 반 가량의 인내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4시 30분 비행기였는데 나는 12시에 공항으로 떠나자고 생각했다. 마사지 샵에서 환전한 돈을 다 써버렸고 이제 딱히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는 카드 사용이 좀 더 용이하니 공항 가서 조금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짐을 찾아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길이 막히지 않아 예상한 대로 1시 30분쯤 공항에 도착했다. 국제선은 보통 3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하니 적당한 시간이었다.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수속을 마치니 시간이 좀 남았다. 배가 좀 출출해서 밥을 먹고 싶었는데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해결하고 가자 싶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노이바이 공항은 총 4층인데 1층은 입국장, 2층은 상가, 3층은 출국장, 4층은 식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4층으로 올라가 적당한 곳에서 마지막 베트남 음식을 즐겼다. 이때 먹은 건 껌 슨(Cơm Sườn)으로 돼지고기 바비큐를 곁들인 밥이다. 마지막까지 알차게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있는 음식점이라 그런지 맛도 괜찮았고 깔끔하게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과연 미얀마 음식은 어떨까? 입맛에 맞을까? 맛있게 먹고는 3층 입구에 위치한 버블티 가게에 가서 버블티를 마시며 휴대폰 충전을 했다. 솔직히 하노이는 쉬어가는 단계였고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나는 미얀마 여행과 관련된 책자를 펼쳐보며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뭔가를 조금이라도 머리에 넣고 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책을 가져왔는데 사실 잘 읽히지 않아 금방 포기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출국 수속을 밟으러 들어갔다.

껌 슨! 떠나기 전에 먹고 가서 좋다. 

 

공항 입구 쪽에 있는 버블티 가게

 

게이트 앞에 도착해 비행기 출발 시각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비행기가 지연되었단다. 아, 그래. 한 번 정도야 지연될 수 있지. 나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지연이란다. 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양곤에서 묵을 숙소에 도착 예상 시간을 7~8시 정도로 말해두었는데 계속 지연되는 비행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초조해졌다. 그렇게 몇 차례 비행기가 지연되는 와중에 게이트 앞에는 어느새 탑승객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나는 이때 깜짝 놀랐는데, 미얀마 여행 사진에서만 보던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저렇게 주황색 승복만 입고 (둘렀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당하겠지만) 다니는 거라니! 물론 한국에서도 스님들이 승복을 입고 다니긴 하지만 그건 개량한복의 느낌과 더 비슷해서 놀랍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쪽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천만 두르고 다닌다니요!? 미얀마가 불교 국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승려들을 보니 그게 더욱 실감이 났다.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또 한참을 기다리니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몰랐던 사실인데 비엣젯 에어는 지연이 자주 되기로 유명한 항공사란다. 나만 몰랐네! 4시 30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6시 15분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2시간이나 지연이 되다니, 미얀마 양곤에 도착하면 거의 깜깜한 밤이었다. 하노이- 양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원래 오후 6시쯤 양곤 도착이었던 비행기는 2시간 45분이 늦어진 8시 45분에 도착하게 되겠지. 뭐 어떻게든 가겠지. 사실 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원래 어찌할 수 없는 일에,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숙소 잘 찾아갈 수 있겠지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 드디어, 양곤으로 출발한다! 출발!

 

6시 15분이 되어서야 드디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