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하노이-5 (1.12.)

거의 1년 전의 일을 떠올려 쓰려니 기억이 뒤죽박죽 섞였나 보다. 더군다나 하노이에서 찍은 사진은 정말 몇 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쓴다. 이때 나는 바로 서호로 향하지 않았다. 일몰을 보기엔 시간이 좀 이르기도 했고 쩨 가게가 호안끼엠 주변이어서 그냥 호수를 구경하러 갔던 것 같다. 호안끼엠 주변은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차량 통제를 하고 밤이면 나이트 마켓이 열린다. 낮 시간에도 차량이 통제되어 있었기에 주말이면 편하게 나와서 놀 수 있다. 나는 호숫가를 걸었다. 하노이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렇다. 나는 바다보다는 강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강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호수가 바다보다는 강에 가까워서 그런가, 그거랑 상관이 없으려나? 아무튼 난 호안끼엠 호수가 참 좋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니. 내가 하노이에 살고 싶은(한 달 살기라도) 이유 중 50%가 바로 이 호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호수 주변엔 사람이 많았고 저 멀리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재밌는 걸 하는가 보다 싶어 다가가 보니 프랑스와 관련된 행사가 열리는 듯했다. 또 이런 걸 볼 행운이!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공연장 쪽으로 들어갔다. 베트남어도, 프랑스어도 잘 모르는 나는 이 행사가 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뭔가 문화 교류 행사를 하는 듯했다. 한쪽에 공연 시간표가 마련되어있었고 살펴보니 잠시 후 또 다른 공연을 한다고 했다. 공연장을 둘러싸고 선 사람들 사이로 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행사는 꽤 큰 규모인 것 같았다. 내가 본 공연은 춤 공연이었는데, 댄스 크루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나는 춤, 노래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냥 춤을 보고 노래를 듣는 건 좋아하는데 내가 직접 하지는 않는다. 안 해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잘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춤을 잘 추는 (몸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고 말이다. 오~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춤 공연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이었다. 나도 청춘의 나이지만 댄스팀을 보고는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자기 팀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자, 이제 여러분과 함께 춤을 춰볼 건데요. 어렵지 않습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니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

 

꽤 많은 사람들이 무대로 나왔고 댄스팀은 사람들은 몇 그룹으로 나누어 춤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때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나도 나가서 춤을 같이 춰볼까? 아닌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면 어떡하지? 진짜 마음속으로 나가볼까 수십 번 망설이다가 결국 나가지 않았다. 정말 이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한 10분 정도 춤을 배우고 연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중간에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나가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나니 영상을 찍는다고 했다.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다고 했나 방송에 내보낸다고 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참 즐거워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해 나가지 못했지만 보고 있는 것으로도 즐거웠다,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이때 그렇게 후회를 한 덕분에 남은 여행에서는 조금 더 용기를 내야지 하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걱정되고 쫄렸을까? 어차피 날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축제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공연장을 나와 다시 걸었다. 행사장 입구에 이 행사의 마스코트가 있었는데, 귀여운 인형탈을 쓴 곰돌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또 다가오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는데 나는 방금 전 얻은 교훈으로 나름 용기를 냈다.

 

"아,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앞에 서있던 어떤 여자분께 휴대폰을 건네고 이 곰돌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랑하는 장소 호안끼엠을 배경으로 이 곰돌이와 찍은 사진이 현재 남아있는 몇 안 되는 하노이 사진 중 하나다. 안 찍었으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춤을 추지 못한 아쉬움도 잠깐, 곰돌이와 사진을 찍어 마냥 신이 난 나는 이제 정말로 서호로 향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꽤 남았지만 가서 서호를 오랫동안 감상하며 기다려야겠다 생각했다. 호수 주변에 전망이 좋은 카페도 많다고 하니 하노이 마지막 밤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올드타운에서 서호까지는 걸어서 가기엔 꽤 멀었기에 택시를 이용했다. 아직 현지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건 못할 것 같아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다. 난 택시를 잘 안 탄다. 아니, 한국에서는 1년에 한 번도 안 탄다. 정말 급하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그것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대중교통도 잘 안 타고 걸어 다닌다. 이번 여행에서도 정해진 일정, 급한 일이 없으니 택시를 안 타고 다니려고 했는데 서호까지는 좀 엄두가 안 나서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올드타운을 빠져나가 서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창 밖을 내다보니 익숙한 거리도 있었다. 이제 여기가 어디구나 하고 길들이 눈에 익는 걸 보면 하노이랑 좀 더 친해지긴 했나 보다. 

 

 

곰돌이와 함께. 이 사진이 남아있어 정말 다행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항상 버스나 택시를 타고 스쳐만 지나갔던 서호에 드디어 가보다니. 내 눈 앞에 호안끼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이건 호수가 아니라 강 같았다. 서호 안 쪽에 있는 사원에 도착을 했다. 우와, 여기구나. 내리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호안끼엠과는 또 다른 분위기. 베트남 특유의 그 노란색 건물과 알록달록 바람에 펄럭이는 베트남 국기와 깃발들. 그리고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는 열대 나무들. 나는 이리저리 셀카를 찍으며 이 장소에 내가 있었음을 흔적으로 남기려 노력했다. 그때 한 모녀가 사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아, 네. 물론이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분간이 안 됐지만 영어로 말을 걸기에 일본이나 중국사람인가 싶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을 하고 두 사람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한국인은 또 사진이지. 최대한 다리가 길어 보이는 비율을 찾아 한 번 더 찍을게요! 까지 외쳐가며 꽤 여러 장을 찍어주었다. 

 

"check it! (확인해 보세요!)"

 

사진이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어줄 생각으로 휴대폰을 건네며 내가 말했고, 그 두 사람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thank you!(감사합니다.)"

"Ah, can you take me a picture?(아, 저도 한 장 찍어주실래요?)"

 

딸이 휴대폰을 건네받았고 나는 사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때, 딸이 사진을 찍는 걸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아니. 여기 말고 조금 더 이게 나오게..."

 

 

네? 그 말에 당황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한국인이세요!?.."

 

내가 한국말을 하자 그 두 사람도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 상황이 웃겨 잠시 깔깔대며 웃었다. 하하하, 저도 한국인이에요. 이런 일이 다 생기네. 난 내가 딱히 이국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재밌는 해프닝이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기에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둘러보았다.

 

 

 

처음 와보는 서호. 알록달록 참 예쁘다.

 

 

 

호수 중간에 떠있는 사원이었기에 사원 안의 길을 따라 걸으면 옆으로 호수가 보였다. 잠깐 멈춰 서서 호수를 감상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파도가 넘실대며 그 역동성을 뽐낸다. 누구는 그 파도 때문에 바다를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호수는 잔잔하다. 물결이 일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잔잔함이 좋다. 고요함, 잔잔함. 거기서 오는 평온함. 나는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일렁대는 마음이 아닌 평온하고 잔잔한 마음을 가진 사람. 

 

사원을 다 둘러보았는데도 해는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원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입구 쪽에 있는 카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기다려야겠다 생각했다. 호수 입구 쪽으로 걸어 나오며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런 호수가 있어서 좋겠다. 호숫가에는 산책로와 공원이 꾸며져 있는데 거기서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가에 앉아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많았고 장사를 하는 엄마 옆에서 뛰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냥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게 좋았다. 해 질 녘의 붉은 햇살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호수와 너무 멀어지면 호수가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최대한 호수와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그중에서도 뷰가 좀 좋은 곳을 찾아 한 버블티 가게에 들어갔다. 왠지 베트남에 오면 버블티를 꼭 마셔야 할 것 같단 말이야. 그 카페는 2층까지 있었고 야외 좌석이 있어서 여유롭게 호수를 감상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구글 맵에 찍어보니 후기도 몇 개 있고 나름 깔끔하고 괜찮아 보였다. 주문한 버블티를 받아 들고 2층의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손님이 많이 없는 건지 아님 바로 앞 도로에서 온 먼지인지 테이블엔 먼지가 많았다. 뭐 이런 것도 참 베트남스럽다 생각하며 살짝 닦아내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버블티를 마셨다. 오늘 하루가 참 길다 생각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하루 종일 먹기만 해서 그런가 걷고 싶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아 서호의 일몰은 포기하고 카페를 나왔다. 날이 흐려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에도 서호 일몰을 못 본다는 게 아쉬웠지만 또 다음에 올 기회를 남기고 가는 거니 그것대로 또 의미가 있다. 구글 맵에서 목적지를 요즘 인스타에서 핫하다는 초콜릿 가게로 찍고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걸으니 그 먼 거리가 별로 멀지 않게 느껴졌다. 얼마나 걸렸지? 한 시간 정도 걸렸나?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조금 어두워졌을 때 가게에 도착했다. 외관이 알록달록 참 예뻤다. 과연 인스타에서 핫 한 카페 같았다. 나는 남은 베트남 동이 별로 없었고 그냥 여기서 주변에 나눠 줄 선물이나 사서 돈을 다 털자 싶어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가격이 꽤 나가는 가게였다. 역시 인스타 핫플은 국적을 불문하고 다 비싼 것인가. 이걸로 선물을 여러 개 사기엔 무리고 이 돈을 주고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역시 먹는 거다. 폰 배터리도 부족해서 숙소로 돌아가서 충전을 하고 나갈까 싶었는데 여기서 충전을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이 매장은 초콜릿을 팔며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꽤나 깔끔하고 세련된 카페인만큼 가격대도 좀 높았다. 커피와 디저트를 둘 다 먹기엔 좀 비싸서 고민을 하다가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하나만 주문을 했다. 배가 불러서 호수에서 이까지 걸어왔으면서 또 먹는 거라니. 나도 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직원이 케익을 가져다주었다. 나온 디저트의 플레이팅에서 꽤 고급 카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내가 대접받는 느낌이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맛에 그렇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맛있으면 다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이것도 맛있게 먹었다. 엄청 맛있는 건지 그냥 먹을만한 건지, 난 잘 모르겠다. 이럴 때면 내가 조금 더 음식 맛을 잘 알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걸까? 맛 공부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은 것도 생각이 안 나고 배도 불러 그냥 이걸로 저녁을 퉁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하노이가 아니라 미얀마였고 나는 내일 미얀마로 이동해야 했다. 나는 내일 일정을 머릿속으로 한 번 짚어보았다. 처음 가보는 나라, 미얀마. 조금 긴장이 되었다.

 

 

카페 메종마루

 

어느 정도 충전을 하고 카페를 나와 다시 또 걸었다. 이미 해가 지고 바깥은 어두웠다. 지금쯤이면 나이트마켓이 열렸겠다 싶어 호수 쪽으로 향했다. 동쑤언 시장은 곧 다가올(아직 2주 정도 남았지만) 명절 뗏 (Tết,설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온통 붉은색의 장식품들이 가득했다. 활기찬 시장을 구경하니 또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에 도착했다. 전에 탕이 소시지가 무엇인지 알려준 적이 있다. 숙 식 이었나? 나중에 찾아보니 xúc xích 이었는데 탕이 나에게 그 단어를 가르쳐 줄 당시에는 정확한 철자를 몰라 숙 식? 숙 식? 하며 따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 단어. 숙 식!  나는 소시지를 파는 여러 가게 중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괜히 베트남어로 말을 하고 싶어서 앞에 보이는 닭꼬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짜오, 까이 나이 라 지? (안녕하세요, 이건 뭐예요?)"

 

갑자기 다가온 외국인이 베트남어를 해서 약간 놀란 듯했지만 아주머니는 능숙한 장사꾼답게 닭고기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나는 잘 못 알아 들었지만 닭고기라고 말했겠지? 나는 소시지를 말해보고 싶어서 고민하는 척을 잠깐 하다가 소시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숙 식?"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못 알아듣더니 내가 어설프게 여러 번을 반복하자 아아아, xúc xích! 하며 웃었다. 오, 알아들었다. 먹혔다! 신이 나는 기분 좋게 하나를 사 먹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베트남으로 뭐라 뭐라 말을 했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하하. 길거리 음식까지 섭렵하고 나이트 마켓 쪽으로 가서 구경을 좀 했다. 밤은 깊어갔고 나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니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었다. 원래 여행지에서는 살에 대한 걱정을 좀 내려놓고 야식까지 알차게 챙겨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따히엔 맥주 거리로 향했다. 

 

 

저녁의 성 요셉 성당.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