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알레르기성 비염인지 감기인지 몸 상태는 좋지 않다. 드러눕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오늘은 진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왼쪽으로는 은은하게 빛나는 다리가 보이고 캄캄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고요하다.
최근 정말 집중력 결핍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지도 듣지도 않는 유튜브 영상을 튼다. 소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시끄럽다'라고 느끼면서도 영상을 끌 생각은 안 한다. 다른 영상을 또 찾아서 켠다. 아이러니다. 이런 나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사실은 그냥 '진지'해지기 싫었던 거다. 고요함이 찾아오면 차분해지고, 나 자신과의 대화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가지려고 하면 어쩐지 귀찮다는 마음이 앞서서 미루고 미뤄왔던 거다.
오늘 영어 학원에서 my heyday가 언제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heyday, 전성기. 나의 전성기가 언제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지금이라고 답했다. 사실 그 질문을 보고 뭐라고 답할까 고민을 했다. 한달 전 베트남 여행 때라고 할까,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라고 할까. 고민을 하다가 지금이 가장 나은 대답일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왜냐하면 요즘의 난 지금 나의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일도 괜찮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만족스럽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맞다. 요즘 나의 생활엔 딱히 장애물이랄 것이 없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하지만 어디서 들은 말인데 이렇게 제한이 없는 자유가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냐? 그건 아니다. 사실 어떠한 제약이 있어야 그것을 극복하고 (또는 견뎌내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의 상태는 평온하지만 바꿔서 말하면 아무것도 도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짜 몸과 정신이 편안한 것. 안주한다는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맞다. 요즘의 나는 여기에 안주하고 있다. 난 이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뭔가 발전적이지 않으면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사실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인데, 그게 나에게는 밀려나고, 퇴보한다는 말과 같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겠지. 어떤 변화?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욕망.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요즘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
신녀성의 책 [신녀성의 레미장센]에서 관통하는 주제는 '욕망을 인정하고 그 욕망을 충족시켜라'이다. 그럼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올해 초 여행할 때 만났던 동행 준석이가 떠오른다. 준석이는 인생에서 놓고 싶지 않은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음악, 운동, 독서. 그 당시 준석이에게 영향을 받아 나도 놓고 싶지 않은 세 가지를 떠올려봤는데, 나에게는 그 세 가지가 "언어, 운동, 독서"였다.
1. 언어
-언어를 잘하고 싶다. 한 언어의 깊이의 문제도 있지만 난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고 싶다. 다양한 언어. 일단 지금은 영어, 베트남어다. 베트남어는 특히나..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내가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인정할 건 인정하자. 베트남어에 대한 나의 욕망은 베트남 여행 직후 가장 강하고, 점점 사그라든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야 접할 기회가 많고 학원도 다니고 있다지만, 베트남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정도도 되지 못하니 사실 계속해서 나에게 동기부여가 될 땔감이 없다. 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꾸준함이 승리한다는 것을. 그 꾸준함이 나의 약점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약점을 깨부술 생각을 해야지. 난 항상 "나는 근데 끈기가 없어."라며 나의 단점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걸 그렇게 인정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인정하고, 그걸 overcome 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왜? 더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들고 싶어서. 정말 얼마예요? 감사합니다. 이런 여행 회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항상 느끼는 건데, 다 같은 사람이고 친해지고 싶고 알아가고 싶다. 하지만 거기서 언어가 벽이 된다면? 인생에서 모르고 살 수도 있는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됐는데! 언어가 안 통해서 '알 수도 있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니! 이것만큼 속상한 일이 또 없다.
2. 운동
-운동. 운동. 운동. 난 사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고, 지금 중요한 건 난 운동이 좋다. 땀을 흘리고 씻는 것은 여전히 싫지만.. 몸을 움직이고 나의 근육을 움직이는 그 느낌이 꽤 좋다. 특히나 달릴 때의 그 기분은.. 정말 좋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는 그 느낌! 절로 웃음이 나온다. 기분 좋다.
여기서의 맹점은 난 일상생활에서의 운동은 싫다. 특히나 오늘처럼 몸이 천근만근 무거울 때는 일상생활에서의 가벼운 움직임도 너무 싫다. 난 본격적으로 '운동한다.'라는 행위가 시작되어야 그제야 몸을 기꺼이 움직인다. 그런데 '운동한다'라는 행위를..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린다는 것. 피티가 있는 날이야 시간 맞춰 가기는 하지만, 집에서 홈트레이닝이나 뭔가를 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아침에 스트레칭하는 데도 밍기적 밍기적 하기 싫어서 꾸물대다가 오래 걸린다. 그러다가 출근 시간이 임박해 스트레칭을 안 하고 넘기기 일쑤다. 그러면 또 '아, 아침을 너무 한심하게 보냈잖아!'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말이다. 인생에서 놓고 싶지 않은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운동으로 고른 사람 치고는.. 너무 느슨한가.
어찌 됐든 난 운동을 계속하고 살고 싶고, 어떤 운동이든.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 본 운동 중에서는 필라테스와 러닝이 가장 재밌었다. 지금 하는 웨이트도 피티 할 때는 재밌긴 하지만 사실 그 동작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필라테스는 동작 자체도 재밌다. 정말 그 부위의 근육을 사용하는 느낌도 나고 말이다. 필라테스.. 이사를 오면서 더 이상 센터를 다니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제일 좋아하던 선생님도 센터를 다른 지점으로 옮기셔서 뭐.. 여러모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아쉽다.
3. 독서
-책 읽기.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 취미가 뭔지 모르겠으면 '남들은 이만큼 안 한다고?' 하는 것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게 본인의 취미라고. 그렇게 치면 독서는 나의 취미다. 나는 남들도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가고 책을 읽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독서는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취미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나는 소설 같은 책을 더 좋아하지만, 사실 소설보다는 사회, 인문, 경제, 과학 등 비문학 서적 책을 더 읽으려고 노력한다. 좋아하는 것과 읽어야 하는 것이 다르다. 읽어야 하는 것들은 나에겐 다소 덜 흥미로운 것들이고 (물론 흥미로운 책들도 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흥미롭긴 한데 그 '읽기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런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자연스레 나의 취미생활과 조금씩 멀어진다.. 그때는 또 독서가 나의 취미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내 취향에 아주 딱 맞는 소설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반갑다! 심지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껴 읽기도 한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김주니를 찾아서]도 그런 책인데.. 이런 책을 만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겠지만 행복하다, 재밌다, 뿌듯하다. 이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없다! 그래서 책을 읽나 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책은 놓고 싶지 않다. 다만, 책을 읽는 이 행위를 단순히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든 기록으로 발전시키면 좋겠다. 독서 노트도, 블로그 포스팅도 여러 가지 도전해 보았지만 앞에서 말한 steadiness가 문제다. 올해는 뭐라도 꾸준히 해보자고.
'Day > Yen's Own Ti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yen’s own time] 04. 온전한 나를 알아가며, 함께 살기 (0) | 2024.11.11 |
---|---|
[yen’s own time] 03. 만남 후 잊기 전 적는 글. (0) | 2024.10.14 |
[yen’s own time] 02. 나의 BIG WHY를 찾아서 (0) | 2023.08.30 |